Sunday, February 9, 2014

창문, 어두운 자리, 거울.

소리와 분노를 진지하게 읽으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 다시 조금씩 올려 봅니다. 자주는 못 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질문에 대해서는 최대한 시간을 내어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과 같은 부분은 번역자인 제게도 절대로 쉬운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벤지 섹션 81쪽 첫째 단락입니다. (설명할 때 편의를 위해 경어를 쓰지 않아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서재로 갔다. 러스터가 등불을 켰다. 창문이 검어졌고 벽의 키 큰 어두운 자리가 왔고 나는 가서 그것을 만졌다.


방에서 밖을 내다보면 아직 날이 훤해 보이지만 방 안의 불을 켜면 바깥이 급격히 어두워 보이는 해질녘이다. 이때 창문은 벤지의 눈에 검어진black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벤지의 시선은 한쪽 벽을 향한다. 오래도록 거울이 걸려 있던 자리의 벽지는 주변과 변색 정도가 달라 표시가 나기 마련이다. 소설의 다른 곳에서 알 수 있듯, 콤슨 형제들은 거울을 통해 '관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거울이 없어진 자리가 벤지에게는 "키 큰 어두우 자리"로 보인다. 방의 불이 켜지자 뚜렷이 인식된 거울은 벤지에게는 '없었던 것이 생긴 것'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거울이 있던 자국이 보이는 게 아니라 그 자리가 "왔고"라고 그는 서술한다. 그리고 그는 그 거울이 있던 자리로 간다. 문door인 줄 알고.

*** 옮긴이 해설에 썼지만 벤지 섹션은 시간 이동이 빈번합니다. (해설이라고 형식에 맞추느라 약간 학구적인 글이 되었지만 그런 거에 구애받지 않고 쓴다면 그렇게 쓰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모더니즘이고 뭐고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거든요.) 갈색 글씨를 이동의 지표로 삼으면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도움이 되는 것은 벤지를 돌보는 하인들의 등장으로 시간대에 대한 감을 잡는 것입니다.

즉, 버시가 등장하는 부분이면 벤지가 3살 ~ 13살, 티피가 나오는 부분이면 벤지의 청소년기, 러스터가 나오는 부분이면 벤지가 어른인 '현재'입니다.



Wednesday, February 5, 2014

퀜틴의 정결한 불길

그때 그 지점에 어떤 그림자가 보였는데, 그것은 강물의 흐름에 거슬러 두툼한 화살 모양으로 정체해 있었다. 날벌레들이 수면을 스칠 둣 말 듯 다리 그림자가 드리운 곳을 들락날락했다. 저 너머가 지옥이기만 하다면. 정결한 불길 속에 죽었으되 죽지 않고 함께 있는 우리 둘. 그러면 네게는 나밖에 없고 또 나밖에 없을 것이며 그러면 너와 나 우리 둘. 불길들의 끝이 위를 가리키는 그곳 그 가운데 정결한 불길 너머 그 공포 가운데 있으리니 화살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점점 커졌다. (156쪽)
 

퀜틴은 다리 위에서 물속에 가만히still 있는 큰 물고기를 보고 "두툼한 화살" 촉을 떠올린다. 이것은 또 끝이 뾰족한 불길flame 이미지를 촉발한다. 퀜틴의 무의식에 단테의 신곡 지옥편 이미지가 겹친다. 연옥의 "정결한 불길"을 통과해서 자신의 죄의식이 깨끗해질 테지만, 그래도 자신은 그 너머의 "공포" 속에 있을 것이라는 의식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단테의 Inferno Canto XXVII 영어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The flame was now upright, and became still, (1)
[ . . . ]
When another flame, which had followed behind, (4)
Made our eyes turn towards its highest point, (5)
From which there issued a confused sound. (5)  
While I was still encased (70)
in the pulp and bone my mother bore, my deeds (71)
were not of the lion but of the fox: I raced (72)
through the tangled ways; all wiles were mine from birth (73)

(Cisson과 Ciardi의 번역 두 군데서 위 4행 아래 4행 각각 인용.)




한편 "정체해" 있는 물고기는 "허공에 갈매기 한 마리가 움직이지 않고 떠 있었다"(119쪽)는 구절과 통하는 이미지다.)

Thursday, July 11, 2013

이 소설에 관하여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 이메일도 좋습니다. 그러면 함께 생각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Friday, March 1, 2013

한번 잡년은...

제이슨 섹션은 다음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한번 잡년은 영원한 잡년이다. 이게 나의 지론이다. 
Once a bitch always a bitch, what I say.

여기서 "bitch"를 '창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bitch에는 그런 뜻이 없습니다. "창녀"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면 이런 문맥에서 whore 라는 말이 가장 일반적이며 포크너는 whore를 썼을 것입니다. 어쨌든 bitch에는 창녀prostitute라는 뜻이 없습니다. 여기서 bitch는   '음란한 여자, 몸이 헤픈 여자(promiscuous woman)'를 뜻합니다. 또한 '심술궂은 여자, 악의에 찬 여자, 마음씨가 나쁜 여자(malicious, spiteful woman)'를 뜻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은 진리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원래 그랬지만 잘 드러나지 않다가 어느 순간에 발각나는 것뿐이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화자 제이슨은 여성혐오자misogynist이지만 일반적인 인간성에 대한 어떤 통찰력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글에서 잡년은 행실이 나쁜 여자를 뜻합니다. 잡년과 개년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결국은 잡년으로 정해 번역했습니다. '개년'은 좀 센 것 같았습니다.
(지금 다시 번역하면 '화냥년'이라고 하겠습니다만.)

여기서 쓰이는 뜻 말고, bitch는 '암캐'부터 시작해 '어렵거나 유쾌하지 않은 무엇'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That job is a bitch. 라고 하면 '그 일은 지긋지긋해.'라는 말입니다. 이 외에 비슷한 뜻이 몇 개 있지만 '창녀'라는 뜻은 없습니다. 

Once a bitch always a bitch, what I say. = Once a bitch, always a bitch. That's what I say. 

이 문장은 제이슨의 내면의 독백입니다. 내면적 독백은 계속되다가 어느 불분명한 순간에 실제 대화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격하기도 한 내면적 독백은 인용부호 없는 대화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엄마와의 대화로 이어집니다. 제이슨은 강박적으로 지껄이는 습성이 있습니다. 속으로 하는 말인지 입밖에 내어 중얼거리는 것인지 항상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제이슨이 말하는 bitch는 일차적으로 조카 퀜틴입니다. 그러나 제이슨 섹션 나중에 가면 알아차릴 수 있듯이 엄마도 포함되고, 더 나아가 모든 여자들, 특히 정숙한 척하는 모든 여자들이 다 포함됩니다.


추한 인간

일견 동정이 가기도 하지만 제이슨은 인간의 추악한 면을 잘 드러냅니다. 인생사가 자기 생각이나 계획대로 안 된다는 것도 잘 보여줍니다. 
나는 말하기를 이것으로 분명히 봤겠지, 누나, 누나가 나를 묵살하고 내 일자리를 날려 보내고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걸 이제 알겠지. (273:15-16) 
I says I reckon that'll show you. I reckon you'll know now that you cant beat me out of a job and get away with it. (205:10-12)

자신의 행적을 뒤돌아볼 줄도 모르고 한 치 앞도 못 내다보지요.

Wednesday, February 20, 2013

삼 일. 삼 회.

삼 일. 삼 회. 제이슨 리치먼드 콤슨 부부 (125:1) 
Three days. Times. Mr and Mrs Jason Richmond Compson (93:24)

"Times"에는 Three가 없는데 왜 "삼 회"라고 했는지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삼 일"이든 "삼 회"든 숫자 3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드시리라 짐작됩니다. 먼저 의미부터 생각해보겠습니다.




사실 "삼일. [삼] 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삼 일” 만에 부활한 예수를 생각하고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예수가 베드로에게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성서구절을 떠올리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은 세 번[삼 회] 수면에 떠오른 다음에야 완전히 가라앉는다는 민간 신앙”을 생각하고 하는 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무엇이라고 하나로 확정할 수 없는 구절입니다.

"삼 일"이라고 하고 '날'이 아닌 '횟수'로 금방 고쳐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삼 회"라고 말하려고 했다가 "삼 일"이라고 하고 금방 고쳐서 말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캐디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집에 내려가서 3일 동안 있었던 일을 상기했다가 자신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삼 일. 회回."라고 번역하려고 했다가 원문보다 훨씬 더 어색해서 "삼 회"라고 했습니다. 위와 같은 사항들이 작의의 범위에 속한다면 그렇게 번역해도 작의가 크게 손상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삼 회"는 125쪽 7줄에도 나옵니다. 그리고 나중에 두 번인가 더 나옵니다.



Monday, February 18, 2013

영국의 더 폴리오 서사이어티에서 작년에 소리와 분노14시간대를 각기 다른 색으로 구별하며 출간했습니다. 처음에 저도 눈여겨보고 구매 충동이 일어났지만 망설였는데, 가격이 한화로 약 38만원인 한정판 1480부가 금방 팔려나가 품절입니다. 이것으로 읽으면 읽기가 더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