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지 섹션 첫 단락을 마저 살펴보겠습니다.
Through the fence, between the curling flower spaces, I could see them hitting.
울타리 틈 구불구불한 꽃 자리 사이로 그들이 치는 게 보였다.
종속절에 대해서는
먼젓번에 살펴봤습니다. 나머지 주절의 동사를 보겠습니다. 타동사 hit 는 독자로 하여금 '무엇'을 친다는 것이지, 하고 생각하게 합니다. '치는', 혹은 '때리는' 행위의 대상, 즉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습니다. "그들이 치는 게 보였다." 그런데 '무엇을' 치는 게 보였다"는 것이지? 하고 갸우뚱하게 됩니다.
그러고는
그들이 깃발 있는 데로 오고 있었고 나는 울타리를 따라갔다.
They were coming toward where the flag was and I went along the fence.
라고 합니다. '깃발 쪽으로'(toward the flag)라고 하지 않고 "깃발 있는 데로"(where the flag was)라고 이상하게 말합니다.
먼젓번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이것을 보면 벤지의 경우 시야, 시계가 사물에 우선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러스터가 꽃나무 옆 풀 속에서 뒤지고 있었다.
Luster was hunting in the grass by the flower tree.
라고 합니다. 무엇을 "뒤지고"(hunting) 있는지 또 목적어가 없습니다.
그들이 깃발을 뽑았다. 그리고 그들이 치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들이 깃발을 도로 놓고 테이블로 갔다. 그리고 그가 치고 딴 사람이 쳤다.
They took the flag out, and they were hitting. Then they put the flag back and they went to the table, and he hit and the other hit.
이쯤되면 골프가 뭔지 아는 독자라면 hit 의 목적어가 없어도 벤지의 서술이 골프 치는 사람들에 대한 것임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작은 골프공이 보이지 않아도 골프채를 휘두르는 동작으로 우리는 그들(골퍼들)이 무엇을 치는지 알 수 있지만, 벤지의 눈에 그것은 그저 어떤 동작일 뿐,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벤지가 세상을 보는 눈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he hit and the other hit" 은 정상적으로는 'he hit and so did the other' 라는 구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으로 봐서 벤지가 '새new 정보'와 '구old 정보'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러더니 그들이 계속해서 갔고, 나는 울타리를 따라갔다.
Then they went on, and I went along the fence.
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것은 교육 받은 화자라면
Then, as they went on, I went along the fence.
라고 하여
그런 다음 그들이 계속해서 가서 나도 울타리를 따라갔다.
라고 썼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종속절과 주절을 사용해서 두 절의 논리적 연결을 분명히 해줍니다. 주절에 무게가 실리도록 하지요. 하지만 벤지는 등위접속사 and 를 써서 단문을 나란히 배치시킵니다. 어떤 절이든 똑같이 취급됩니다. 어떤 한 절이나 문장에 특별한 무게가 실리지 않습니다.
이상과 같이 벤지는 합리적인 문장, 텍스트를 구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보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 어떤 동작의 인과관계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치 벤지의 감각기관에 형성되는 인상들이 그의 머릿속에 어떤 초보적인 정보들로 배치되는 순간 그것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일종의 '원시적'인 관점이지요.
우리는 교육과 관습에 길들여져 세상을 바라보는 데 사용하는 어떤 범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눈이나 귀에 들어오는 '정보'를 의식적 또는 무의식저긍로 분류하고 이해하지만, 벤지에게는 그런 '범주'가 없습니다.
동사도 단순과거형이 대부분이며 부사는 장소와 관련된 부사 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제약 때문에 우리는 습관적으로 동원하는 독서 습관이나 지식을 유보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벤지 섹션에 연동해야 합니다. 그럴 경우 벤지는 우리에게 언어를 새롭게 보는 눈을 가르쳐줄지도 모릅니다.
일단 이처럼 벤지 섹션의 첫 단락을 이해한 다음, 위와 같은 특징들을 염두에 두고 벤지 섹션을 읽어나가면 벤지 섹션에 보다 효과적으로 몰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시간대를 옆에 자세히 구분해나가고 있지만 크게 청소년 러스터, 버시, 티피가 등장하는 장면으로 크게 분류만 해서 읽으셔도 작품을 감상하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