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16, 2013

그러는 것은 예수보다 더 많은 상처를...

234쪽의 20줄 "그리고 아버지가"부터 그 단락이 끝날 때까지 퀜틴은 아버지와의 긴 대화를 나눈 기억에 깊이 침잠합니다. 아무런 문장 부호 없이, 그리고 대문자를 써야 할 자리에 대문자를 쓰지 않고, 화자를 식별하는 대명사를 대문자가 아닌 소문자로 씁니다. 자살하는 날, 퀜틴의 무의식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이 부분에서 퀜틴의 근친상간 고백이 서술되지만, 본문에 뚜렷한 언급은 없어도 지금까지 우리가 본 바로는 그게 허위 고백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편 저자인 포크너는 근친상간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확실히 말한 바 있습니다. 이 단락에서 일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지시관계를 혼동할 독자가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아버지가 [...] 한 달 정도 메인 주에 가 있어도 좋아 그럴 돈이 있으니까 검소하게 지내기만 하면 말이야 돈을 쓰기 전에 잘 생각해서 쓰는 법을 연습하는 것도 유익할 거야 그러는 것은 예수보다 더 많은 상처를  낫게 했느니라 하기에 내가 제가 거기에 가서 다음주나 다음달에 제가 깨달았으리라고 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것을 깨닫는다면 하니  (236:21-237:3) 
you might go up into maine for a month you can afford it if you are careful it might be a good thing watching pennies has healed more scars than jesus and i suppose i realise what you believe i will realise up there next week or next month (178:11-16)

"그러는 것은"은 돈을 슬기롭게 쓰는 습관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메인 주에 휴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236쪽 8줄에 "최후의 도달점"이라는 말이 있죠? 원문은 "the final main" 입니다. main에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주요 부분'이나 '목적'을 의미하기도 하고 '싸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final main"은 "최후의 도달점", 즉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main"은 위에 인용한 maine, 즉 메인Maine주와 발음이 같지요. 퀜틴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휴양하라며 메인주에 가서 좀 지내라고 하지만 의도치 않게 그것은 죽음을 암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퀜틴은 결국 자살하지요. 그 것을 알고 "다음주나 다음달에..."라고 하는 퀜틴의 회상 독백을 읽으면 가슴이 아픕니다.





4 comments:

  1. 영미 작가들이 저런 식으로 wordplay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한국소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기법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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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발음은 같은데 철자가 다르거나, 발음도 같고 철자가 같은 말이 발달한 탓도 있고, 성서와 그리스로마 신화로부터 현대까지 축적되어온 깊이도 있어서, 각 단어에 실리는 뜻과 연상이 다양하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으로 말하자면 단색으로 칠하지 않고 같은 색을 다른 색조로 표현함으로써 뉘앙스를 주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그럼으로써 한 가지 뜻으로 확정되지 않는 모호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위트를 표현하기도 하는 등 쓰임새가 다양합니다. 어느 정도 답이 되었나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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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00년의 고독'을 쓴 마르케스는 소설 하나에는 과거 1000년의 문학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아무리 독창적인 소설이라도 독불장군일 수는 없는 것이죠. 과거의 언어와 문학이 서양 문학에는 계속 살어서 숨을 쉽니다. 한국소설은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소설 전통이 얕고 폐쇄적이라서 그럴지도 모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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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국어가 알파벳을 기반으로 하는 서양어보다 언어적 실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한 구조라서 더 폐쇄적인 것 같아요. 이상처럼 실험하는 시인들이 있긴 한데 서양식 wordplay가 아니라 그냥 실험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다반사, 이 경우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모더니스트들의 실험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둘다 별 의미는 없죠. 답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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